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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저리 이야기
"바.라.봄에 대하여"…방작실습 야외수업 현장을 가다
- 박* 홍
- 조회 : 3925
- 등록일 : 2017-04-24
퇴고글 없는 텅 빈 카페에 들어갔다 한기를 느낀 장 "The Runner" 해랑 교수는, 수강생들의 얼어붙은 글 감각을 따스하게 되살리기 위해 햇살이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꽂는 세명대 야외음악당으로 방송작문실습 수강생들을 불러모았다. 수업 전 장 교수가 "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광경을 떠올려보라"며 명곡 "봄날은 간다"를 틀자, 일부 수강생들은 "라면"을 떠올리며 히죽거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.

▲ 햇살의 사정없는 정수리 터치에 퇴고하지 않음을 반성하는 학우들
이날 야외수업의 목표는 "묘사를 위한 감각 깨우기"였다. 장해랑 교수는 "바라보라, 관찰하라, 그리고 발견하라!"를 열정적으로 외치며 제발, 부디 "과장하지 말 것", "감상에 빠지지 말 것", "현학적으로 쓰지 말 것"을 당부했다. 교수의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, 바깥 공기를 맡아 마냥 즐거운 재소자수강생들은 "묘사가 뭔데?"를 외치며 봉쌤의 역작 호수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.

▲ 관찰의 즐거움에 대해 실은 <한겨레>의 "바.라.봄.에 대하여"를 소개해보지만, 봄바람은 활자를 허락하지 않았다.
장 교수의 우려와는 달리 수강생들은 야외수업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. 저마다 시각, 촉각, 후각, 염력 등 감각을 활용해 봄을 온몸으로 먹었다. 제주도에 여자친구를 두고 온 고하늘(27) 학우는 "그늘진 벤치에 앉아 봄에 헤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상상해보니 눈 앞이 깜깜해져 그만 눈을 감고 말았는데 어젯밤 야식으로 먹은 치킨 피자 탕수육이 생각난다"며 장 교수가 그토록 하지 말 것을 당부한 3가지(과장, 감상, 현학)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.

▲ ① [시각] 이름 모를 꽃을 보며 츄러스를 떠올린 이연주, 박경난 학우.
② [미각] 벚꽃을 빨대로 빨면 청설모에서 벌꿀꿀벌로 변신할 수 있다던 이창우 학우.
③ [후각] 당사자의 요청에 의한 삭제.
④ [염력]으로 제주도에 있는 여친과 교신중인 고하늘 학우.
이날 야외수업에 참가한 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관찰한 자연과 풍경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펼치는 모범생들이 간혹 목격돼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할 뻔 했다. 5분 만에 호수공원을 속보로 한바퀴 돈 예비 마라토너들은, 벤치에 죽치고 앉아 평소 자신들의 관심사인 패션, 셀카, 도박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이어갔다.

▲ 자연과 풍경을 주제로 진지하게 토론중인 학우들.
패션에 관심이 많은 김*나(27) 학우의 "랑쌤 오늘 택시기사 같아요"라는 시각 묘사에 장 교수는 "택시가 아니라 버스다"며 틀린 팩트를 친절히 바로잡아줬다. 그 와중에 벤치 영업권을 놓고 학부생들의 혀 차는 소리도 아랑곳않고 서로 치고박고 싸운(시늉만 낸) 고 모(27) 학우와 안*기(26) 학우는 "인간이 느끼는 감각 중 최고는 고통이다!!"는 말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해 관객들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했다.

▲ ① [패션] 청-청 커플룩을 느닷없이 선보이며 커플 청정지대였던 10기 학우들 마음에 불을 지핀 나혜인, 박경난 학우.
② [셀카] "최고의 각도는 sin 몇 도?" 그냥 많이 찍는 것으로 삼각함수 이론을 극복중인 학우들.
③ [도박] 양산과 벚꽃 나무를 보고 "비광"을 떠올린 학우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박경난 학우.
④ [팩트체크] 택시와 버스의 차이점을 설명중인 장해랑 교수.
⑤ [이래서야"] 공원에서 자릿세 다툼이 일어난 상황을 묘사한 고 모, 안*기 학우.
더 이상 공원에서 느낄 게 없어진 학우들은 야외음악당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. 얼마나 굶주렸던지 대학반점 배달차를 발견한 박 모 학우는 "왕자님이 백마를 타고 오는 듯 했다"며 가짜 뉴스를 퍼트렸다. 학우들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장 교수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짜장면과 볶음밥을 입 안 가득 밀어 넣으며 혓바닥이 춘장을 만났을 때 선사하는 감각에 대해 사유했다. 한 학우는 강의실에서는 전혀 하지 않던 질문을 오늘이 날이라며 열정적으로 던졌지만 수강생들 중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.

▲ ①②③ 짜장면과 볶음밥을 먹으며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발을 떠올리는 학우들.
④ 수업 막바지 질문 폭격으로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 김민주 학우.
방송작문실습 수강생들은 야외수업을 마치고 수용소문화관으로 돌아가며 "낭만과 배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럽다"며 다음 야외수업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. 방송작문실습 수업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예정된 야외수업은 없으며, 오늘 마음껏 보고 느낀 것들은 글로 써서 다음주까지 늦지 않고 제출할 것을 당부했다.
